[오늘을 여는 시] 4시 반의 라면

권녕하 시인

하인규 기자 | 기사입력 2021/10/09 [10:54]

[오늘을 여는 시] 4시 반의 라면

권녕하 시인

하인규 기자 | 입력 : 2021/10/09 [10:54]

▲ 권녕하 시인(펜화초상)  © 팝업뉴스 하인규 기자


(팝업뉴스)하인규 기자=권녕하 시인 ․ 문화평론가는 1991년 《교단문학》(시) 등단, 한강문학회 회장, 《한강문학》 발행인 겸 편집주간, 한국문화네트워크 상임대표, 한국문인협회, 국제펜한국본부 이사, 한국문학비평가협회 감사, 1999년 기자언론상, 2015년 세계평화문화대상 등 수상, 저서 『숨어 흐르는 江』, 『살다 살다 힘들면』 외 다수가 있다.

 

4시 반의 라면

 

밤이 오는 밤이면 밤마다

잠 못드는 밤이면 또 밤마다

하루 이틀

살면 살수록 늘어나는 밤마다

살날은 짧아지는데 왜

밤만 자꾸 길어지느냔 말이다

 

그러다 문득 끼어든 깨달음 하나

먼저, 냄비에 찬물을 넉넉히 붓고

면과 양념을

한꺼번에 푹 담근 다음

쎈불에 확 끓여대면

냄비 뚜껑이 한순간

게거품을 문다 둘

 

이 세상 숨쉬고 사는 모든 생명체들

죽을 때가 왔구나 하고 느끼면

먼저, 음식 먹기를 피하면서

오장육부 비우기를 시작한다

그리하여, 죽기 위한 준비를 다 마치면

눈꺼풀을 어스름하게 두고

마지막 날 빛을 겨우 담은 채

입은 반쯤 벌리고

가쁜 숨을 몰아쉬다 게거품을 문다

이윽고, 마지막 내뿜는 숨소리는

우주를 꿰뚫는 순수한 울림, 끝에

큰 숨을 뚝 멈춘다

그리고, 육신에 머물던 장내 가스를

풀풀 배출해내기 시작한다 셋

 

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

냄비 뚜껑을 들춰본다

조리법을 싹 무시했지만

꼬들꼬들 잘만 익었다 넷

 

한 세상 별거 아니다

날빛이 가면 또 밤이 오고

 

권녕하 시인 

 

하인규 기자 popupnews@naver.com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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